교회

하나님의 공의의 변증

배은총 2025. 11. 27. 05:43

욥기 34장 전체 해설입니다. 욥기의 흐름을 따라 엘리후의 논지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욥기 34장 해설

(엘리후의 두 번째 연설 –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변증)

욥기 34장은 엘리후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정의, righteousness) 를 변호하며, 욥이 한 말들을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욥이 “나는 의로운데 하나님은 부당하게 나를 치신다”고 했다며 욥의 말을 잘못 해석하고(과장하고) 그에 대해 논박합니다.




1. 1–9절: 엘리후가 지혜자들에게 판단을 요청함

엘리후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는 욥이 ‘나는 죄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공의를 부정했다고 비난합니다.

“욥이 ‘나는 정당하다. 하나님이 내 권리를 빼앗으셨다’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든지, 악을 행하든지 상관이 없다”(욥 9:22–31의 요지를 과장하여 해석).


해석 포인트
엘리후는 욥의 말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습니다. 욥은 “내가 완전히 죄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내 고난이 특정한 죄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이 교만해졌다고 판단합니다.




2. 10–15절: 하나님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으신다

엘리후의 핵심 메시지:

>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전능자는 불의를 저지르지 않으신다”(10절).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각 사람이 한 대로 갚으신다 (11절)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


2) 우주와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에게 불의가 있을 수 없다 (13–15절)

하나님이 숨을 거두시면 모든 육체는 다 멸망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질서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공의롭게 행하신다.


해석 포인트
엘리후의 이 주장은 신학적으로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공의로우십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이 ‘옳은 신학’을 욥의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3. 16–30절: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신다

엘리후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합니다.

1) 하나님은 권세자나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19절)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다.

2) 하나님은 악인을 즉시 심판하실 수 있다 (20–23절)

하나님은 심판하는 데 시간도 필요 없고,

조사하거나 누가 고발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3) 악인은 은밀한 죄도 숨길 수 없다 (21–22절)

> “그분의 눈은 사람의 길을 살펴보시고, 그들의 모든 발걸음을 감찰하신다.”



4)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한 지도자도 하나님이 끌어내리신다 (24–30절)

해석 포인트
엘리후는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개인·사회·지도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로 “그러므로 욥의 고난도 분명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 없다 → 욥이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유도합니다.




4. 31–37절: 엘리후가 욥을 질책함

엘리후는 욥이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하나님, 제가 알지 못한 죄를 범했다면 깨닫게 해 주십시오.” (31–32절)



그러나 욥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며 비난합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가한 비난:

1. 욥은 자신의 죄를 부정했다 (34절)


2. 욥은 불평을 멈추지 않는다 (35절)


3. 욥의 말은 죄를 더욱 더하는 것이다 (37절)



해석 포인트
엘리후는 욥에게 회개를 촉구한 점은 바르게 보일 수 있으나, 욥의 고난이 죄의 결과라고 단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욥기 38–41장)은 엘리후를 직접 꾸짖지 않지만, 엘리후의 논리를 뒤집으며 욥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보여줍니다.




욥기 34장의 핵심 메시지 요약

1.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공의로우신 분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부당하게 행동하시는 일은 없다.


2.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를 아시고 판단하신다.
숨겨진 죄라도 감찰하신다.


3. 그러나 고난이 곧 죄 때문이라는 공식은 잘못이다.
엘리후는 바른 신학을 잘못 적용함으로 욥을 상처 입힌다.


4. 고난 중에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주님, 저를 살피소서”의 태도가 필요하다.


5. 엘리후의 한계는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랑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적용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올 때
→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지 말고, 그분의 성품을 붙잡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고난을 쉽게 판단하지 말 것
→ “저 사람에게 분명 문제가 있겠지”라는 태도는 엘리후와 같다.

어려움 속에서도 겸손히 묻자
→ “주님, 제 마음 가운데 돌이킬 것이 있다면 비추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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